법감정의 괴리 수필

법조인은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법률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법은 생각보다 감정에 많이 좌우된다. A.I.가 판결문을 쓰지 않는 한 법감정이 판결의 고려요소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법감정은 법지식과 무관하다. 이론이 배제된 직관적인 정의관념(intuitive sense of justice)이다. 법치주의 하의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 간의 법감정이 어느 정도 교집합을 이룰 때 안정될 수 있다.

법감정의 주체별로 밴다이어 그램을 그려보면 아마 이럴 것이다.



법감정의 주체는 법원, 사회, 개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3개의 원이 겹치는 면적이 충분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너무 좁아도 문제지만 3개의 원이 합쳐져서 하나로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위 그림처럼 어느 사회는 법원이 사회의 법감정을 충실히 수용하고 있지만 이와 동떨어진 독특한 법감정을 가진 개인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은 사이코패스 범죄자일 수도 있지만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법학자일 수도 있다. 정신이상자일 수도 있고, 기존 법리를 바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또는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을 이끌어낼 시민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와 같은 개인의 일탈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법감정으로부터 괴리된 개인은 사회에 의해서 재교육 되거나 법원의 판결로써 응징당한다. 아주 예외적으로 사회와 법원이 개인에게 감화되기도 한다. 


어떤 사회는 법원이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개인의 편에 서는 경우도 있다. 위 그림에서 개인은 아주 특이한 특정인이 아니고 사회의 일정 계층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자들이다. 이들은 주류가 아닐 뿐이다. 법원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위와 같은 그림은 사법작용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하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주류의 법감정이므로 위와 같은 그림은 현실과 규범의 갈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법감정이 우상단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게 진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은 언제나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논리와 지식 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결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많다. 결국 판결이 내 법감정과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법원과 멀어진 나는 개인인가 사회인가? 전자이면 섬뜩하고 후자이면 슬프다. 어느쪽이든 법원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건 잔혹한 일이다.




덧글

  • 나인테일 2019/07/12 03:55 # 답글

    전자라면 섬뜩함을 느끼고 말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해야죠. 언젠가 국가와 충돌할 수 밖에 없을 때를 대비해 싸울 준비를 하던가 숨거나 도망갈 궁리를 하던가 성벽을 쌓던가요.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앉아서 죽는거죠.
  • 2019/09/04 05: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9/07 00: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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